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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호강남 이야기

떠리남

by 떠리장 2024. 4. 7.

2020. 6. 1
저녁을 잔뜩 먹고 소파에 앉으니, 식곤증에 눈이 감겨온다.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다 보니, 친구랑 통화한다고 안방으로 들어간 와이프가 나오지 않았다.
흰둥이(7세, 여, 비숑테리어)도 언니 따라 안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스럭부스럭 배를 긁으며 거실 불을 끄고 '아줌마 뭐해요'하고 와이프 옆에 가서 눕는다.
식도염 때문에 먹고 바로 자는 건 피해야 하는 일중 하나였지만, 의지가 식곤증을 이기기엔 역부족이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보낸 것이라 자기 위로를 하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역시나. 얼마 안 가 속에서 전쟁이 났다. 식곤증은 3시간을 못 버티고 무너졌다.
자는 둥 마는 둥 화장실 간다고 일어나니 새벽 두 시 반이었다.  저녁에 잔뜩 쑤셔 넣은 게 후회가 되면서, 냉장고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거실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서로 눈에 콩깍지가 씌어, 짧게 연애하고, 집안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결혼을 치렀다.
덕분에 우리의 결혼생활은 지금도 흥미진진하다.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이 사람을 진작부터 깊게 알았으면 결혼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내 팔에 안겨서 간간히 코를 고는 와이프를 볼 때는 참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생각해보면 난 그동안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았다. 
서울서 살았던 10여년 동안, 그것은 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이었다.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나는, 인간관계속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삶을 뒤흔들어놓을 때가 많았고, 그것을 어떻게 컨트롤 해야할지도 몰랐다.
비수같이 마음속에 박힌 몇 마디의 말에 며칠, 몇 주를 우울해하며, 삮이지 못한 분노와 자괴감이 마일리지처럼 쌓이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전을 끝내야겠다고 생각이들었을 때 끊어냈고, 끊어졌다.
삶의 주체가 내가 되는 것에 만족했고, 그 때문에 내 삶속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내 삶의 방향성을 흔드는 것에 대해서 경계가 심했다.
필요하거나 수동적인 사회 생활을 빼고나면, 누구에게라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난 내가 하고싶은데로하고 살았고 누구에게라도 참견하려들지 않았다. 
 
그런 내가 우연히 결혼을 하고, 내 삶의 대부분이 한 사람에게맞춰지고,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은 결혼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어찌보면 참 재미있다. 


2022. 8. 6
아이러니하게도 윗글은 쓴 게 벌써 2년 전이 되어 버렸다.
제목도 없이 글을 다 쓰면 공개로 돌려놓는다는 것이 블로그 2개의 글을 채 다 쓰지도 못한채 2년 가까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부부에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집안 사업을 같이 하며 불합리한 환경에서 버텨왔던 와이프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일상이 유지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졌고, 
나는, 나의 무능력을 탐탁지 않아했던 가족들과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해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는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불화와 불신이 우리의 인생을 뒤덮는 걸 지켜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다.
네버랜드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목적지도 딱히 없었다.

 
'가화만사성'  

 

  어릴적에는 가화만사성이라는 가훈을 적어오는 친구들을 보며, 고리타분한 집안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가정은 당연히 어떤 모습이고, 그렇지 못한 집안은 다른 것이 아닌 틀린 집안이다, 그렇기에 보통의 집들이라면, 다른 사람들 또한 우리집처럼 비슷하게 살겠지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 내 삶이 꼬일대로 꼬이고, 소소한 행복조차 힘겹게 얻어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말의 뜻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음을 실감한다.